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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CIA와 KGB는 나치가 만들었다

by 욱시무스 2021.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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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와 KGB는 나치가 만들었다

 

194556, 치열한 전투 끝에 베를린을 점령한 연합군은 이튿날인 57, 독일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게 엄청난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은 연합군은 독일 항복 직후 베를린에 숨어 있던 히틀러와 그의 친위대 참모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CIA 로고

그러나 항복문서를 전달하기 일주일 전, 나치 친위대는 베를린의 지하 벙커에서 열렸던 마지막 회의에서 조직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바로 지도자들 중 나이 든 사람은 남겨두고 젊은 사람들은 모두 해외로 탈출시키는 것이었다. 이 작전에 따라, 연합군이 베를린을 점령하기 직전 친위대의 젊은 지휘관들은 세계 각국으로 도피했다.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호주, 그리고 반유태계 아랍 국가들로 도주한 친위대의 지휘관과 간부들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타국에서 친위대 스타일의 비밀경찰 활동을 벌였다. 후에 이 조직은 이스라엘의 정보국 모사드(MOSSAD)와 직접 첩보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KGB 마크

전범으로 사형된 독일군 친위대의 우두머리 힘러(Himmler)1943년부터 친위대의 모든 실권을 젊은 장교 레인하르트 겔렌(Reinhard Geglen)에게 넘겨주었다. 겔렌은 당시 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태인들을 말살하고 전쟁포로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제2차 세계대전 최악의 전범들 중 하나였다.

 

1943년 소련을 침공한 것이 실수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돌프 히틀러는 겔렌을 레닌그라드로 보내 소련군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입수하라고 명령했다. 겔렌은 당시 소련에서 입수한 정보를 모두 마이크로필름에 넣어 베를린으로 가져왔다. 독일이 항복한 후 겔렌은 미군에게 자수했는데 이때 자신이 갖고 있던 수만 장의 마이크로필름을 미군 측에 제공했다. 이 대가로 그는 전범재판을 피할 수 있었다.

 

겔렌은 당시 미국의 정보국이었던 OSS에게 "소련은 독일이 항복하면 미국 본토로 쳐들어가 세계를 정복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가짜 정보를 넘겨주고는 그때부터 자신이 알고 있던 나치 친위대와 게슈타포 운영에 관한 극비문서를 OSS에게 제공했다. 소련과 미국을 대립시켜서 살아남으려 했던 것이다. 후에 겔렌의 조언으로 OSS는 오늘날의 CIA로 개편됐고 겔렌은 그 후 25년간 서독의 정보국 책임자로 활동했다.

게슈타포 간부 클라우스 바비(Klaus Barbie) 역시 19425월 프랑스 리옹에서 레지스탕스와 그들을 도와준 프랑스인들을 학살해 '리옹의 도살자'라 불렸지만, 전쟁이 끝난 후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1955년까지 정보국 요원으로 일했다.

 

전범재판을 피해 미국과 소련으로 흩어진 옛 친위대 대원들은 모두 CIAKGB의 간부로 자리잡았다. 그러고는 두나라의 경쟁을 부추겨 결국은 새로운 냉전시대를 열었다.

 

겔렌의 지휘 아래 전 세계에서 활동한 친위대 대원들은 아랍의 테러리스트들을 부추겨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했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중심에 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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